엔비디아는 왜 우리나라에 GPU를 주었을까?
지난 10월 30일 ~ 10월 31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1박 2일의 일정 중, 머무는 시간이 약 30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엄청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1박 2일 동안 있었던 일과 엔비디아는 왜 GPU를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깐부아이가?
30일 저는 일본 출장 중 이었습니다. 거래처와 회의를 마치고 보고서를 쓰고 있는 와중, 저희 회사 근처(삼성동) ‘깐부 치킨’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지 출처: 중앙일보
외신기사를 통해 사전 브리핑에 삼성, 현대차, SK, 네이버가 엔비디아 GPU를 구매한다는 소식으로 이미 모든 디테일이 확정된 상태에서 세 회장님들의 치킨 회동은 명확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바로 치킨집 회동은 거대한 이벤트라는 것입니다. 과거 젠슨 황은 대만에서도 모리스 창 TSMC 회장을 야시장에서 만나기도 했죠. 거기에 세 사람이 만나는 치킨 집의 이름이 ‘깐부치킨’이라는 것 자체가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나와 두 사람은 HBM 메모리를 공급해주고, 피지컬 AI를 만들어 줄 ‘깐부(절친)’라는 것이죠. 치킨집 회동이 끝나고, 세 회장님은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현장으로 가서 코엑스를 또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엔비디아 GPU ‘빅딜’ - 26만장 GPU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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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울을 뒤집어 놓으시고, 젠슨 황 CEO는 다음날인 31일에 경주로 내려가서, 이재명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네이버 이해진 의장, 그리고 30일 밤의 두 회장님과 함께 만나고 GPU 26만장을 한국 기업과 정부가 구매할 것이고, 한국에 우선 공급해주겠다 라고 발표합니다. 금액으로는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정부와 삼성전자, 현대차, SK그룹에서 각각 5만 장, 네이버에서 6만 장을 구매하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약 2000만 장 보유)과 중국(약 150만 장 보유)에 이어 세계 3위로 GPU 확보국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엔디비디아는 왜 우리나라를 골랐을까?
엔비디아가 우리나라를 콕 찝어 GPU를 공급한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 기업들과 아주 긴밀하게 잘 알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과 맺어온 공급망 협력이 이번 협력의 발판이 됐다는 말이 나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자율주행차 등을 논의하고, 네이버는 차세대 ‘피지컬 인공지능’ 플랫폼 공동 개발 협의를 이어오는 등 협력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이렇게 미리 신뢰관계를 국내 기업들과 쌓아오고, 이들의 미래 사업 계획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기꺼이 큰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는 겁니댜.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AI 개발에 쓰이는 GPU의 80~90%를 구글·오픈AI 등 빅테크 기업들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러한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한테 너무 기대지 말자!” 하며 독자적인 칩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불어 미국 vs. 중국 무역 갈등과 수출통제로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엔비디아는 미중 무역 갈등으로 최첨단 칩의 중국 판매가 허용되지 않으며 일부 저사양 AI 칩만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데요. 이에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엔비디아의 판매처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 놓이자 안정적인 판매처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와 ‘빅딜’ 계약을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보더라도 한국이 적합하다.
더불어 황 CEO는 최근 생성형 AI 다음의 미래 먹거리로 ‘피지컬 인공지능’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우선 도입·적용하기 위해 제조업과 정보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최적의 시험대’로 본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황 CEO가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한국은 소프트웨어와 제조, 인공지능 역량을 모두 갖춘 드문 나라”라고 치켜세운 건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피지컬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로봇이나 자율 주행차 등에 탑재돼 인간처럼 관성과 운동량 등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현실 세계에서 적용하는 걸 의미합니다. 주로 제조업 공장 등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AI 산업 전망 - 이렇게 받은 GPU로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엔비디아와의 협력으로 정부가 목표로 잡은 ‘AI 3대 강국’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원래 이재명 대통령은 ‘2028년까지 GPU 5만 장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요. 엔비디아의 26만 장 공급 약속으로 GPU 수급난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돼었습니다. GPU를 확보하게 된 정부는 “앞으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에 속도를 내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피지컬 AI 모델도 개발해 국가 AI 전략을 ‘투 트랙’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다고도 얘기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 등 이번에 엔비디아로부터 GPU를 공급받기로 한 기업들은 확보한 GPU를 활용해 반도체 AI 팩토리 건설·초대형 AI 모델 학습·피지컬 AI 플랫폼 구축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가 이끄는 AI 반도체 공급망에 더욱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엔비디아가 공급할 GPU에 두 기업이 생산한 HBM(HBM3E)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을 계기로 차세대 제품인 HBM4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핵심 공급사’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100% 좋기만 한 건 아냐!” 하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피지컬 AI를 위한 소프트웨어 학습 등 모든 과정을 엔비디아의 생태계에 의존한다면 이후 홀로서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대기업 위주로만 AI 발전이 이뤄져 AI 산업에서의 혁신을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외부 협력과 함께 엔비디아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인프라 규모를 달성하는 차원의 목표를 넘어, ‘모두를 위한 AI’ 비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확보한 GPU를 스타트업이나 공익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자원 분배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가 확보하게 된 GPU 26만 장을 어떻게 현명하게 쓸지 동시에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은 최고의 파트너라고 공헌한 엔비디아
이번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엔비디아는 공식 채널을 통해 한국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담은 특별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단순히 엔비디아가 왜 한국을 선택했는지를 넘어서, 엔비디아가 한국을 단순한 고객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파트너십의 시작
이번 협력은 단순히 GPU를 구매하는 일방적 거래가 아닙니다. 엔비디아가 필요한 HBM을 공급받고, 한국이 필요한 GPU를 공급받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더 나아가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함께 시장을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치킨집에서 시작된 이 만남이 세계 AI 산업 지도를 바꿀 수 있을지,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 우리는 엔비디아와 함께 ‘AI의 다음 챕터’를 함께 써나갈 동반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젠슨 황 CEO가 남긴 “한국은 소프트웨어와 제조, 인공지능 역량을 모두 갖춘 드문 나라”라는 말처럼, 우리나라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정한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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