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하반기 AI 트렌드 정산
안녕하세요!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해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는데요, 저는 2025년 하반기 AI 트렌드를 정리하는 글을 뒤늦게 쓰게 되었습니다.
2025년 하반기, 7월부터 12월까지 불과 6개월이었지만 AI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당시에는 하나하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지난 6개월간 우리가 함께 지켜본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고, 그 속에서 드러난 트렌드를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사건 나열을 넘어, 이 변화들이 어떤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AI 모델 경쟁: 왕좌의 이동
국가대표 AI 선정, 디지털 주권의 첫걸음
2025년 하반기는 한국 AI 산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7월, 한국 정부는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국가대표 AI’ 선정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5개 기업·기관이 참여한 이 사업은 마치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처럼, AI 분야의 최고 기업들이 모여 한국판 ChatGPT를 만들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최종 5개 팀(네이버클라우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NC AI, LG AI연구원)이 선정되었고, 목표는 2027년까지 글로벌 톱 수준의 국산 AI 모델을 개발해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글로벌 톱 모델 대비 95% 이상의 성능을 내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사업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서 해외 기술 의존도 감소와 독자적인 AI 생태계 구축이라는 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GPT-5, 기대와 현실의 간극
8월 8일, 소문만 무성했던 GPT-5가 공식적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약 2년 5개월 만의 메이저 업그레이드였고, 7억 명의 사용자와 500만 개의 기업 고객이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단일 모델 통합 전략은 사용자 불만을 불러왔고, 환각 개선은 환영받았지만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쟁사 대비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번 GPT-5는 과거처럼 “와우” 효과를 주지 못했습니다.
대신 OpenAI는 코딩 성능 향상과 API 가격 인하로 개발자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적 변화를 보였습니다. 화려한 기능보다는 기존 사용자 유지와 B2B 시장 확대에 무게를 둔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AI 산업이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었습니다.
제미나이 3, 3년 만의 반격
11월, 구글은 제미나이 3를 공개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주요 벤치마크에서 GPT-5.1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특히 논리 추론과 코딩 영역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제미나이 3의 ‘딥 싱크(Deep Think)’ 모드는 답을 내기 전 내부적으로 여러 단계의 사고를 거치며 오류를 스스로 검증하는 기능으로, 지연 시간을 늘리는 대신 신뢰도를 끌어올렸습니다. 2022년 ChatGPT에 충격을 받아 ‘코드 레드’를 선언했던 구글이, 꼬박 3년 만에 기술적 우위를 다시 입증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성능 그래프의 역전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생성형 AI 태동기 이후 처음으로 OpenAI가 ‘언더독(Underdog, 추격자)’의 위치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OpenAI의 코드 레드, 왕좌에서 언더독으로
12월 1일, OpenAI는 내부적으로 ‘코드 레드’를 선포했습니다. 제미나이 3의 약진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광고, 쇼핑 에이전트, 헬스케어 도구, 영상 생성 모델 SORA 같은 멀티 트랙 프로젝트들이 일제히 중단되었고, 모든 역량을 ChatGPT의 속도·안정성·개인화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정확히 3년 전의 구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을 본 구글이 ‘코드 레드’를 선언했던 것처럼, 이제는 공수만 뒤바뀐 셈입니다. 지금의 OpenAI는 그때의 구글과 여러모로 겹쳐 보입니다. 코드 레드를 선언한 뒤 나오는 대응들이 ‘우리가 기준이다’라는 태도라기보다는, ‘우리도 저 정도는 한다’는 반응형 전략에 가깝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2. AI 인프라: 자본과 하드웨어의 전쟁
쿠팡의 클라우드 진출, 아마존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7월, 쿠팡은 ‘CIC(Coupang Intelligent Cloud)’ 출범을 알리며 본격적인 클라우드 시장 참전을 선언했습니다. 정부의 AI 3대 강국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네이버, 카카오, NHN 등과 경쟁에 나섰습니다.
쿠팡의 클라우드 진출은 아마존의 AWS를 벤치마킹한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이커머스로 시작해 클라우드로 제2의 도약을 이뤄낸 아마존의 행보를 따라가려는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단순히 물량을 쏟아붓는다고 성과가 보장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고도화된 기술력, 안정적 운영 경험, 그리고 시장 신뢰가 축적되어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엔비디아와 OpenAI, 1000억 달러의 손잡이
9월, 엔비디아와 OpenAI가 손을 잡았습니다.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최소 10기가와트(GW) 규모의 엔비디아 시스템을 배치하는 파트너십으로, 엔비디아는 최대 1000억 달러(약 139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10GW의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GPU는 대략 400~500만 장으로, 지난해 엔비디아가 출하한 GPU 양의 두 배에 해당합니다. 이번 협약은 엔비디아가 칩 공급자에서 AI 인프라 전 과정의 주도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동시에 OpenAI는 GPU 안정적 수급을 확보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적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협약은 AI 산업이 이제 단순한 소프트웨어 경쟁을 넘어 하드웨어와 인프라의 체력 싸움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엔비디아, 한국에 GPU 26만 장 선물
10월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난 뒤, 경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GPU 26만 장 공급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금액으로는 14조 원에 달하며, 정부와 삼성전자, 현대차, SK그룹에서 각각 5만 장, 네이버에서 6만 장을 구매하게 됩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약 2000만 장), 중국(약 150만 장)에 이어 세계 3위 GPU 확보국으로 올라섰습니다. 엔비디아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HBM 메모리 공급망 협력, 새로운 시장 필요성, 그리고 피지컬 AI의 최적 시험대로서의 한국의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3. AI 응용: 로봇과 이미지 생성의 새로운 지평
나노바나나, 기술은 뛰어났지만 밈은 되지 못했다
9월, 구글의 ‘나노바나나(Nano Banana)’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Gemini 2.5 Flash Image’라는 정식 명칭을 달고 있지만, 출시 초기에는 나노바나나라는 코드네임으로 LMArena를 통해 먼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모델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동물·캐릭터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편집·합성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LMArena 벤치마크에서 세계 최고 성능을 기록하며 기술적 우위를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나노바나나는 지브리풍 이미지처럼 폭발적인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의 허들이 높았고, 높은 사실성이 오히려 심리적 장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용자 경험과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Figure 03, ChatGPT 모멘트를 재현한 휴머노이드
10월,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Figure가 공개한 단 6분짜리 영상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Figure 03’은 장난감을 정리하고, 음식물이 묻은 접시를 물에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었으며, 세탁물과 세제를 세탁기에 넣고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Figure가 OpenAI와 결별한 지 단 8개월 만에 자체 AI 모델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두뇌를 빌리는 대신,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로 삼아 로봇이 그 동작의 의도와 순서를 스스로 배우게 만드는 기술을 구현했습니다. ChatGPT가 인간의 ‘언어’를 학습했다면, Figure의 AI는 인간의 ‘행동’을 학습한 것입니다. 이는 로봇의 무대를 공장을 넘어 우리의 집으로 넓혀줄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4. 보안과 개인정보: 어둠의 그림자
AWS 사이버 정전, 클라우드 의존의 위험
10월, AWS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내부 시스템 오류로 약 두 시간 동안 수많은 디지털 인프라가 멈췄습니다. 왓츠앱, 스냅챗, 줌, 레딧,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관련 오류 신고는 800만 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문제가 된 곳은 “us-east-1”이라 불리는 북버지니아 리전으로, AWS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핵심 인프라 중 하나였습니다. ‘DNS’ 시스템에서 고장이 난 것으로 파악되며, 잘못된 업데이트가 원인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 곳에만 기대면, 함께 멈춘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세계가 얼마나 소수의 클라우드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동통신 3사,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2025년 하반기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심각한 경고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한국 이동통신 3사인 SKT, KT, LG U+ 모두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각 통신사마다 유출 규모와 원인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대규모 고객 정보가 노출되었다는 점입니다.
통신사는 우리의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통화 내역, 위치 정보, 결제 정보 등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보안 사고는 국민 전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쇄적 유출 사태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쿠팡, 역대급 개인정보 유출 사태
11월, 쿠팡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무려 3,37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65%,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을 포함한 수치입니다.
지난 8월 약 2,300만 명이 피해를 본 SKT 유출 사건보다도 훨씬 큰 규모로, 사실상 쿠팡을 한 번이라도 써본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유출 기간은 2025년 6월부터 11월까지 약 5개월간 지속되었고, 용의자는 쿠팡에서 인증 업무를 담당했던 중국인 직원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이 직원은 퇴사 후 중국으로 출국한 상태로, 수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퇴사 후에도 개발자용 접근 권한이 남아 있었거나, 퇴사 전에 미리 만들어둔 ‘뒷문(백도어)’이 존재했을 가능성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5개월간 유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3,000만 명이 넘는 고객의 정보가 빠져나갔다면 상당한 트래픽 흔적이 남았을 텐데,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권한 관리 체계의 구조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되면 최대 9,000억 원에서 1조 원 가까운 과징금 부과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국내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과징금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쿠팡의 이번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글로벌 기업의 인력 구조와 권한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마무리: 변화의 속도와 책임
2025년 하반기, AI 산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회전했습니다. 단 한 번의 정체가 곧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장에서, 누구나 ‘코드 레드’를 마음속에 품고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속도와 책임 사이의 긴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신뢰·안전·투명성은 속도보다 앞서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필요한 건, “다음 모델이 얼마나 더 똑똑해질까?”보다 “이 기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2025년 하반기는 AI가 더 이상 한 회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6개월이었습니다. 구글, 중국 오픈소스, 앤스로픽, 그리고 한국의 국가대표 AI까지. 이제 AI의 미래는 다수의 기업과 서비스가 얽혀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동화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동화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현실적인 선택과 책임 있는 기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왕좌의 주인이 누구든,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은 그 사실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의 변화를 되돌아보며, 올해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좋은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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